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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살이 20년/권무일

무굴도사 2023. 12. 10. 11:45

모노로그

 

제주살이 20

 

권 무 일

 

세월의 덧없음이여! 내가 안락한 베이스캠프를 떠나 낯선 미지의 땅으로 뛰어나온 지 20년이 흘렀다. 나는 학업을 마친 후 예순이 넘도록 산업의 역군으로 뛰었다. 그리고 나는 2004년 봄, 가족을 뒤로하고 제주로 향했다. 제주에는 연고도 없고 단 한 사람의 아는 이도 없었다.

모슬포의, 송악산 초입의 산이물 마을에 집을 빌렸다. 10여 평 되는 조립식 주택에 제법 우영밭도 딸려있는 집이다. 이 마을은 20호가량의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몇 개의 시골스러운 밥집 말고는 대개가 앞 바당에서 물질하여 생계를 꾸려가는 해녀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해가 형제바위 사이로 얼굴을 내밀기도 전에 바닷가로 나간다. 송악산의 바람 부는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사계포구를 다녀오기도 한다. 낮에는 바닷가 바위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고 바위에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는다. 밤에는 달과 별을 벗하며, 별도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도 습관처럼 오솔길을 걷는다. 온갖 상념이 꽝꽝 머리를 때린다. 혼자 지내는 밤은 길고 지루하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나는 글을 쓴다. 그러다가 수필가가 되었고 소설가가 되었다. 조그만 글재주라도 발견한 것이 다행이었다.

 

처음, 마을사람들에게 나는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가가기로 했다. 보통으로 제주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수십 년을 살아도 육지인은 육지인이라서 제주토박이들과 섞이기가 어렵다고 한다. 지연·학연·궨당‧‧‧ 어디에도 끈이 없는 내가 아닌가. 나는 먼저 가슴을 열었고 나를 낮췄고 그들 모두를, 편협함까지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관혼상제에도 찾아다녔고 마을의 각종 행사에도 얼굴을 내밀었고 심지어 시께(제사)에도 끼어들었다. 내가 다가가니 그들도 다가왔다. 나는 여기 농부들 그리고 해녀들과 어울리는 것을 무척 즐거움으로 생각한다. 물질하고 오는 해녀들은 나를 보고 손을 흔들고 밭일하는 농부들은 내가 지나가면 허리를 편다.

나는 제주의 명승지와 유적지를 찾아다니곤 한다. 간 곳 또 가고, 본 곳 또 본다. 제주는 아름답다. 제주의 하늘은 넓고 크다. 제주의 곳곳, 마을과 밭, 그리고 작은 연못까지도 전설이 묻어있고 삶의 애환이 서려 있다.

오름을 오른다. 여러 형태의 분화구가 신비를 간직한 지질과 식생의 보고다. 오름에서 넓은 평원과 바다를 내려다보자면 호연지기를 느낀다. 곶자왈의 덤불을 휘젓고 숲길을 걷는다. 곶자왈에서 자라는 나무와 야생화는 생태의 보물이다. 편백과 삼나무가 내뿜는 숨결로 가슴이 뻥 뚫린다.

나는 각계각층의 도민들을 찾아 그들이 모진 삶을 살아왔던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듣는다. 도서관을 찾아 제주에 관한 문헌들을 읽는다내가 전에 어렴풋이 알았던 43의 비극이 나를 화나게 한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다. 이민족에 대한 대학살도 아니다. 이데올로기의 다름으로 인하여 적진을 몰살시키는 초토화 작전도 아니다. 국가의 어떤 지도자에게 무고한 자기 백성을 한 줄로 세워놓고, 노인과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집단사살을 자행하는 권한이 주어졌단 말인가? 그래서 제주사람들은 그 후손까지도 병들어 있다. 사람들의 정서는 문드러지고 꼬이고 외돌아지고, 가끔은 울근거리고 냉가슴을 앓고 있다. 그 이후가 더 문제다. 43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보다 더 큰 문제가 이 섬에 도사리고 있다. 방치되고 철저하게 외면당한 제주사람들의 삶의 현실이 문제이고 치유의 손길은커녕 아직도 진영의 논리에 그들을 가두어두는 냉랭한 시선이 문제다.

제주의 역사는 육지의 역사와는 다르다. 한국사 책에서 다루지 않거나 도외시하거나 왜곡한 제주만의 역사가 있다. 그래서 승자의 잣대로 제주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안 된다. 제주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 온갖 풍상을 이겨내며 모진 목숨을 이어간 끈질김을 품고 있다. 제주의 역사는 착취와 굴종의 역사였다. 그리고 저항의 역사였다.

나는 제주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글로 쓴다. 나는 제주에서 글을 끄적거린 지 5년 만에 수필가로 등단했고 내처 같은 해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8, 67세 때의 일이다. 그리고 나는 제주도 특유의 애환이 깊이 묻혀있는 조상들의 삶을 더듬어 찾기 시작했다. 43을 쓰기엔 내 필력이 모자라 관심의 시계바늘을 뒤로 돌렸다. 나는 제주의 역사를 탐구해왔다. 역사를 탐구하다 보면 의외의 곁가지가 눈에 띄게 되어 나는 역사적으로 제주를 빛낸 인물들을 그렸다.

역사가는 역사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역사서의 빈칸을 상상력으로 메꿔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의녀 김만덕과 헌마공신 김만일을 역사소설로 엮었고 사료가 남아있는 이방익의 표류기를 해설서로 썼고 이방익이 다녀온 길을 따라 중국답사기를 썼다. 12년간 도합 6권의 책을 썼다.

나는 20년간 제주도에서 살아왔다. 대정에서 11, 애월에서 9. 금년에 제주살이 20년에 돌입한 나는 많이 생각했다. 자식들은 그런대로 자리를 잡았고 성장한 손주들은 내 품을 떠나버려 마음 둘 곳 없고‧‧‧ 어쩌면 자식들에게 짐이 될 수도 있는, 말하자면 내 나이는 죽음을 기다리는 나이인가? 하는 일 없이 고장 난 유성기바늘처럼 나는 지난날을 되뇌며 헛돌고 있는가?

아니다. 100세 시대, 나아가 120세 시대에 80세는 또 다른 시작 아닌가? 내가 건강하고 열정, 의욕 그리고 호기심이 있는 한 나는 할 일이 있다. 80이 되던 재작년(2021), 나는 대학교 일본어과에 입학하여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세월에서 소홀히 한 것, 지나친 것, 빼놓은 것, 왜곡된 것, 생략된 것들을 찾아, 메꾸고 드러내고 발전시키는 것이 이때에 내가 할 일이라고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 나는 할 일이 많다. 오늘을 위해서 어제를 산 것이다. 나는 늦게나마 호기심과 관심의 창문을 활짝 열고 제주의 풍광, 제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제주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탐구하고 체험하면서, 쓰면서 제주에서 여생을 보내고자 한다.

내 삶의 연적硯滴이 마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먹물에, 삶의 여적餘滴에 붓을 듬뿍 적신다.